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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석의 스마트 모델링] 8비트 PC의 황금기와 사라진 영재

류한석 (컬럼니스트) mrlonely@tlcsoft.com

2004.08.20 / PM 04:50



[지디넷코리아]며칠 전 필자는 18년 전에 알게 된 지인을 아주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다.

그 분은 예전월간지 컴퓨터학습(마이컴) 출신의 기자였는데,

필자가 고등학생 때 컴퓨터학습의 PC CLUB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분이다.

당시 그 분은 20대 중반의 매력적이고 활기찬 여기자였고 필자는 컴퓨터에 미쳐있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서로 중년의 모습으로 얘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서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하고,

언제나 필자의 마음에 담겨있는 안타까운 사실 하나를 밝혀보도록 하겠다.


1983년은 국내에서 PC가 처음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지고 팔린 기점이 되는

중요한 해이며, 그 해에 중요한 컴퓨터 잡지들이 창간되었다.

필자 또한 1983년에 수학 선생님의 추천으로 우연히 PC를 접하게 되었고 컴퓨터학습,

웨어, 그리고 짧은 인생을 살다간 학생과컴퓨터 3가지 월간지를 창간호부터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보았었다.


FC-100으로 시작한 베이직 프로그래밍

필자는 금성의 FC-100으로 베이직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는데, 1983년 당시 국내에는 프로그

래밍 자료가 전무하였기 때문에 학교를 마친 후 멀리 떨어진 세운상가에 있는 컴퓨터 서점에

가서 PIO와 같은 일본 잡지를 사다 보고는 하였다. 세운상가에서 안 좋은 물건을 팔며 호객행

위를 하는 무서운 아저씨들을 피해, 서점으로 막 뛰어들어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방학 때는 종로에 있었던 컴퓨터 대리점에서 살다시피 하며 또래의 동지들과 정보를 공

유하고는 했는데, 그러던 1987년에 민컴이라는 회사에서 발간되던 월간 컴퓨터학습에서 사

고(社告)를 통해 전국에서 '컴퓨터 좀 한다' 하는 중·고·대학생, 일반인을 모집하였다. 그

리고 회사의 심사를 거쳐 20~30여명의 사람들로 'PC CLUB'이라는 아주 평이한 명칭의 모임

이 결성했는데, 아마도 최초의 공식적인 PC 커뮤니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후 대학생과 일

반인의 모임은 곧 흐지부지 되었고 2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은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PC

CLUB은 X와 Apple II로 나뉘어져 활동을 하였는데, 필자만 유일하게 양쪽 모두에서 활동

을 하였다. 지금도 갖고 있는 기술의 양다리 근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컴퓨터학습 PC CLUB 시절의 기억


1983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8비트 PC의 황금기는 X, AppleII+, SPC-1000의 트리

오가 장악하였다. SPC-1000은 NEC의 PC를 모델로 하기는 했지만 토종 PC라고 할 수 있는

데, X나 Apple II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사용자가 적은 편이었다. 당시 X 기종은 대우

IQ 1000·2000이 유명하였고, 삼보 트라이젬은 Apple II 호환 기종으로 유명하였다. 한

때 세상을 풍미했던, 추억의 이름들이다.



PC CLUB 모임은 컴퓨터에 미친 2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에게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마포에 있었던 컴퓨터학습 편집실에서 LOGIN, X 매가진, BYTE 등의 외국 컴퓨터 잡지를 맘

껏 볼 수 있었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잡지에 활발한 기고를 하였으며 'X I·II 파워

업 테크닉', '애플IIe 테크노트'와 같은 서적을 공동 집필하기도 하였다. 다들 BIOS 레벨

에서 어셈블리 언어로 PC를 맘껏 다루었으며 저속 모뎀을 통한 PC 통신도 누구보다도 먼저 접

했고 정말 모든것에 있어서 얼리어댑터였지만, 그런우리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이 하나 있었

다.

그것은 바로 입시였다. 우리는 매일매일 컴퓨터에 미쳐서 살았는데, 정말로 모든 에너지를

프로그래밍에 쏟았고 그것은 바로 물리적으로 학교 공부를 할 시간이 없음을 의미했다. 조숙

한 멤버들은 학교 공부의 무의미함에 대해 역설하고는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조숙함은 어쩌

면 낙오자가 되는 징후였다. 1980년대 당시 어린 시절 일찍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

다는 것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통조림 같은 인간을

생산하는 학교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모들의 입장

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진정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컴퓨터 또는 입시 공부? 그리고 깊은 상실감

클럽 멤버들은 늦어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필자를 포함한 몇

몇 멤버들은 대외적인 수상 경력이 있고 잡지 기고 또는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벌기도 하였지만, 지금과 달리 당시는 그것이 어떤 플러스 요인도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

변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받을 뿐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포기하고 입시에 전념하든가, 또는 대학을 포기하든

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해다. 당시는 학력고사를 보았고 전후기로 나누어 모집하던 시

기로서, 전기 경쟁률이 5대 1에 육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클럽 멤버들은 정말로 두 부류

로 나뉘게 되었다. 컴퓨터를 포기하고 입시에 전념한 멤버들은 거의 모두 서울대, 연고대 등

의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컴퓨터를 단념하고 입시에 몰두한 이들의 기

분은 과연 어땠을까? 필자는 그것이 일종의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컴퓨터를 영혼을

가진 생명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과거에 소유했던 X II, Apple IIe, SPC-

1000A 컴퓨터들이 수호천사가 되어 지금까지 필자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

자는 순진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PC에 대한 배신을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어쨌든 컴퓨터 대신 입시 공부를 선택한 멤버들과 컴퓨터와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웬일인지

그것은 회복되지 않았다. 어쩌면 배신당한 컴퓨터가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

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대학 신입생이라는 것이 꽤나 방탕한 시기이고, 그리고 절묘하게도

1990년 전후의 시기는 8비트 PC와 16비트 PC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그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에 의해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은 대학으로 사라졌고, 이후에는 컴퓨터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지 못하고 대부분 평범한 사용자로 남게 되었다.


낙오자가 된 영재들

그렇다면 사랑하는 컴퓨터를 한시도 포기할 수 없어, 차라리 대학을 포기한 멤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한 멤버들은 대부분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있었다. 또래의 누구보다도 일찍

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발견했다는 자부심, 학교 공부는 자아실현에 의미가 없으며, 대

학에서도 배울 것이 없다는 확신 등이 어우러져, 남들이 볼 때는 어떻든 그저 세운상가에서

PC를 조립하며 프로그래밍 아르바이트를 할지언정 무의미한 대학에는 진학하지 않겠다는 생

각이 있었다. 또는 진학하고자 해도 이미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이 부실한

멤버들도 많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모든 것을 올인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포기한 멤버들의 인생은 그다지 잘 풀리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사업을 한 후

배도 있고, 탁월한 프로그래밍 실력을 인정받아 회사에 취업한 친구도 있고, 세운상가에서

매장을 운영한 이도 있지만 그들의 치기 어린 자신감은 이 사회에서는 애초부터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기분만으로 살아가기에, 이 사회는 너

무나 많은 전제 조건을 요구하는데 그것에는 학력 및 경륜이 포함된다. 지금은 그래도 좀 나

아졌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더욱 심했다.


당시 필자 또한 대학에 진학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까지 프로그래

밍에 미쳐 살면서 많은 대외 활동을 하였다. 고3때 밤을 새며 ISAM 기반의 데이터베이스 처

리 프로그램을 작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3 1학기 때 갑자기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

서 사회의 냉혹함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로 인해 뒤늦게 대학을 가기로 결정을 하

게 된다. 그 후 고학을 하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후에도 수많은 사연들이 있지

만 여기에서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필자의 컴퓨터에 대한 열망은 집

안 사정으로 인해 오히려 필자를 꾸준히 한 길로 가게 만들어 주었다.


20여 년간의 PC 역사를 생각해 보면, 국내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이 몹시 아쉽다. 미국이

나 일본을 보면,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이 현재 유명 IT 회사의 CTO나 수석 개발자로 일하

면서 또한 활발히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물론 그런 케이스가 없는 것

은 아니지만, 필자가 아는 수많은 8비트 PC 시절의 영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필자보

다 훨씬 뛰어났던 한 후배는 8비트 PC의 황금기에는 훌륭한 어셈블리 프로그래머였지만, 컴

퓨터를 단념하고 서울대에진학하였고 이후 리포트를 쓰기 위해 16비트 PC의 사용자가 되었고

지금은 그저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다.


그것을 개인의 선택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

만, 입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포기하고 평범한 사용자로 전락한 영재들, 컴퓨터를

일순간도 포기할 수 없어 대학을 포기했지만 학력 및 나이 차별로 인해 낙오자가 되어 지금은

잠수해버린 영재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나라 IT 산업의 위상 중 유독

소프트웨어 산업이 저급한 수준에 머무르는 이유에는 분명히 이러한 과거의 요인이 감추어져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꿈 꿀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사회는 언제쯤?

20여 년에 걸친 긴 얘기를 짧게 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것이 제한적인 경험을 가진 한 개인

의 사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얘기를 하며 공유했던, 필자가 갖고 있는

이러한 안타까운 기억을 한번쯤은 공개적으로 실토해보고 싶었다. 그로부터 사회가 많이 변

했고 지금은 대학 진학에 특기자 전형 등의 혜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단지 대학 진학 또는 취업 여부를 떠나, 자신의 적성을 일찍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노

력하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진정한 적

성을 찾아서 발견해내고, 그 목표를 위해 한 단계씩 정진해나가는 젊은이로서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사회는 언제쯤 올 것인가? 지금과 같은 사회적 풍토에서는 여전히 그것이 요원할 뿐

이다. @


PS: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당시 PC CLUB 멤버들의 근황이 많이 궁금하다. 혹시 이 글을 본

다면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트랙백 주소 : http://www.zdnet.co.kr/Reply/trackback.aspx?key=00000039129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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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es24.com/24/goods/4697155?scode=032&OzSrank=1

"내가 니 앱이다" 란 책이에요.

책을 쓰면서 느꼈던 건 이건 제가 쓴 책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집자의 입김이 막강하다는 사실이였어요.

이건 제가 쓴 마지막 에필로그인데 편집자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거라서 올려봅니다.


 




얼마전 드디어 원고를 다 넘기고 나서 '이제 끝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예스24 스튜디오에서 책소개와 책 내용과 관련된 인터뷰를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촬영하고 공동 저자분들과 치킨에 맥주 한잔을 하면서 '이제 드디어 끝이다' 하고 헤어졌는데,

 

또 이렇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에필로그를 작성해달라십니다.

 

사실은 하나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로 대신 하겠습니다.

 

 

지식산업은 인류가 만들어 낸 산업중 사실 가장 복잡한 산업입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산업 또한 지식산업에 해당하죠

 

그러한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다보니, 성과를 내려면 몇가지 전제 조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 관해 간단히 말씀 드리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성과를 내려면 혼자보다는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셨으면 좋겠구요.

 

아마추어 보다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분들과 함께 하셨으면 좋겠구요.

 

또,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는 노력을 꾸준히 하셨으면 좋겠구요

 

한발은 이곳에 또 한발은 다른곳에서 일하는 분들보다는 이 일에 올인하시는 분들과 함께 하셨으면 좋겠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을 보게 됩니다.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 그 분들은, 이 일을 하기위해 다른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이일을 하다가, 다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또 그렇게 앱을 만들고 계십니다.

 

밥 걱정 안하고 맘껏 개발하시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힘든과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애플의 두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구글의 창업자가 처음 투자를 받고나서 버거킹에서 버거를 먹으며 미래를 상상했던것처럼.

 

 

미래는 예측하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상상하고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측가능한 미래는 재미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미래를 상상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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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zdnet.co.kr/ArticleView.asp?artice_id=20101027131446 [칼럼]한국식 고용구조의 병폐 SI에서 희망 찾는법 김국현 IT평론가 http://goodhyun.com/ 2010.10.27 / PM 01:17 [지디넷코리아]"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에 따라 다니는 부속품으로만 인정하는 풍토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정부구매제도에서까지 소프트웨어의 공과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으며 어느 업체가 힘겹게 개발해 좋으면 무단으로 복제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이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정부지원에서까지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풍토.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과연 소프트웨어 산업을 우리가 이렇게 무시해야 할 것인가 그 의문점은 바로 몇 전문기관의 예측에서도 잘못된 견해라는 것이 입증된다" 마치 오늘 아침에 나온 듯한 이 기사. 실은 1985년 4월 23일자 매일경제신문의 한 꼭지다. 25년전부터 지금까지 소프트웨어는 늘 부속품이었고, 산출물로서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독립적 가치는 인정받지 못했으며, 정부는 아무 생각 없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늘 이 모양이었던 것이다. 잠시 반짝 이상계와 환상계가 형성될 무렵 각각의 세계를 형성한 주역들에게 월계관은 주어졌지만, 사회 전체에 이들의 이상과 환상이 충분히 차고 넘치고 있다고는 하기 힘들다. 네이버, 다음, 네이트, 엔씨소프트, 넥슨의 근무 환경은 지극히 훌륭하지만 소프트웨어를 부리는 것이 목표인 이들의 고용 흡수력은 미미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업계 종사자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릴 수는 없는 일. 이들은 분명히 조금씩 각자의 세계를 바꾸고 넓히고 있지만, 정말 바뀌어야 할 세계는 여전히 현실 안에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가 고용되어 있는 이 현실 안의 세계. 제조, 물류, 유통, 금융, 농업, 건설 등등 우리의 삶과 생활과 사회. 우리가 흔히 국가 경쟁력을 말하는 세계는 바로 이 곳이다. 소프트웨어의 참된 역할은 이 곳을 이상계와 환상계의 변방으로 끊임 없이 밀어 붙이며 그 마찰 속에서 변혁을 일으키는데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은 바로 현실계에 고용된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아키텍트 등 소프트웨어를 아는 노동자들의 힘이다. 우리의 문제는 이 힘이 쇠약해지고, 그나마 있던 힘들 중 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도시유목민 들은 이상계와 환상계로 떠나가고 있다는데 있다. 물론 최전선으로 가고 싶은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최전선으로 창업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지친 몸을 달랠 안정적 삶을 찾아 간다면 이는 이상한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현실계의 소프트웨어업, 즉 SI는 한국 고용 구조의 병폐를 가장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분야가 되어 버렸다. IT의 1년은 바깥 세상의 7년. 바야흐로 사회의 거울인 만큼 축소판의 역할마저 하고 있다. 일용, 임시, 계약 등 온갖 기간제 근로에, 파견, 도급, 용역, 사내 하청 등 간접고용은 기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 잣대 고용이 만들어지고 있는 대표적 업태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신자유주의에 물들은 갑 기업들이 내부유보를 쌓아가며 고용을 축소한 결과일까? 천만의 말씀. 오히려 이 씁쓸한 결과는 현실계 프로젝트마다 목격되는 아무 기여를 하고 있지 않은 좀비 사원들의 존재에서 볼 수 있는, “고용안정성” 덕이다. 갑(그리고 더불어 을) 규모의 기업에서 해고는 상당히 힘든 일이고, 고도성장기를 통해 큰 기업들은 종신고용 연공서열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현실계 기업의 근로자는 주기적으로 보직 전환하여 고용 지속성을 높일 수 있는 일반 사무직 위주로 채용하는 편이 고용주 입장에서는 안전이고 합리적 선택인 것이다. 시대가 바뀌는 굉음이 들려도 이 시대를 이끌 모난 인재를 고용하는 대신, 둥글둥글한 일반적 인재를 고용하고 이 일반 인재가 특수 인재에게 하청을 주는 형태를 취한다. 왜냐하면 특수 인재를 고용했다가 시대의 방향이 바뀌었을 때 전문 분야가 명확한 이들을 떠나 보내기 힘듬을 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조직 내에는 시대를 열어 젖힐 신선한 인재는 없고 일반 관리자만 가득해진다. 놀랍게도 IT의 문제는 청년 실업의 문제와 같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기업의 CEO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고용 유연성을 보장 받지 않는 상태에서 갑자기 수요가 생겼다고 하자. 유연성이 높은 북구 국가라면 아마 인재 확보를 위해 바로 다 고용해 버렸을 것이다. 해보다가 아니면 집에 가라고 하면 되니까. 그러나 한국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RFP를 발행, 하청을 모집한다. 수요를 해소하고 바로 떠나 보낼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이 반복적으로 꼬리를 물며 갑을병정으로 이어진다. 이 상황은 전문성을 잃은 채 관리자가 되어 늙어 가는 정규직에게도 괴로운 일이다. 비정규 취급을 받는 전문직의 리스크를 알기에 섣불리 전문성을 취하려 들지 않고 조직이 원하는 인재로 길들여져 간다. 그러나 그 후 여하간의 이유로 그 조직을 떠나게 되었을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가운 겨울. 아무도 앉을만한 의자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은, 하청의 대명사 건설업과는 다른 일. 어느새 21세기, 이제는 그 기업 비즈니스의 성장과 생산성과 생존을 좌우하는 일이 되었다. 이 과업을 하청 받은 생면부지 타인이 하고 있었으니 국가 생산성이 말이 아닌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사실, 을 밑의 병, 정으로 내려 가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의미가 없고, 이윤율 저하로 심지어 워킹 푸어(working poor) 상태로 진전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정상 사회에서는 기업에 직접 고용되어야 할 인재들이 다단계 간접 고용에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조와 노동계도 관심 없다. 소프트웨어 벤처는 어느새 인력 파견업이 되어 버렸건만. ■희망은 자조(自助)와 개혁에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자기 계발을 해 봐야 의미 없음을 깨닫고, 이를 아예 포기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일도 이해가 간다. 컴퓨터 공학 및 전산이 인기가 없어지고, 3D 업종이라 기피한지 오래. IT는 곧 미래지만 그 일은 하기 싫다는 이율배반이 젊은이들. 아무리 소프트웨어 공학, 서비스 공학을 연구해 봐야 돌아 오는 미래가 다단계 하청의 하부 기술자라면 패기 없음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누구 탓을 하는 대신 함께 풀어야 할 문제와 그리고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가 모두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1) 만약 여러분이 현실계에서 일하고 있다면 아무리 지쳤어도 스스로를 이상계와 환상계의 변경으로 밀어 붙일 것. 오픈 소스 활동에 참여하여 자신의 평판을 현실 밖 세계에 인지시키는 일, 주말에 작업한 앱을 앱스토어에 제출해서 어떻게 가치가 움직이는지 직접 느껴 보는 일, 모두 현실계식 고용에서 벗어나 "나만의 왕국"을 만들어 가는 첫 발자국이다. 아무리 현실이 괴롭고 지쳐도 잠을 줄이고 여가를 줄여 해 볼만한 일이다. 예를 들어 최근 모바일과 소셜 앱스토어는 추천 공간이다. 그 결과 여러분은 두 가지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상계와 환상계로 도주할 수 있는 힘. 혹은 그 쪽으로 이 현실계를 이끌고 갈 수 있는 힘. 어느 쪽이 더 숭고한 것임은 그 과정에서 더불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2) 그러나 마지막으로 더욱 급한 것은 바로 이 사회 구조의 숙제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는 일이다. 왜 기업은 외국처럼 백발의 프로그래머를 직접 고용하지 않는지, 왜 청년들의 일자리는 없어졌는지, 무엇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지, 왜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지, 이 절망을 함께 느끼는 일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정책을 이야기하고, 함께 연대하고, 지지하고, 투표하고, 그렇게 사회를 바꾸며 “나만의 왕국”을 넘어 “우리의 왕국”을 꿈꾸는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꿈꾸던 선진국, IT 강국이란 바로 이러한 과정을 말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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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 Type Test

Brain Type Test 2011/03/26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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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To-Do List Maker 입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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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와애플INC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일반 > 해외경영이야기
지은이 마이클 모리츠 (랜덤하우스, 2010년)
상세보기

스티브 잡스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읽어보세요.

가끔 그가 따라쟁이에 흉내쟁이라고 생각한다면,

읽지마세요.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이미지만 바꾸고 올리니 잘 바뀝니다 :)

7.1 기반입니다.

좋군요!! ㅋ

첨부파일은 AT&T 파일입니다.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김수영 (웅진지식하우스, 2010년)
상세보기

오늘 잠깐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 :)

내가 가진 현실에 불만을 가질 수가 없잖아.

난 꿈을 몇개나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노력을 해왔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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